[에세이] 건강한 영혼이 깃들 몸
새로운 도전을 설계할 때 여러분은 우선적으로 어떤 작업을 선택하나요? 저는 인벤토리 체크, 즉 제가 보유하고 있는 모든 자원을 꼼꼼히 확인하는 과정을 시작했습니다. 그 시간 동안 관찰하고, 성찰하고, 깨달은 내용을 담았습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20년을 달렸기에 아쉬움은 없다. 하고 싶은 일은 다 했고, 성과도 기대 이상 거두었다. 조직을 떠난 후 7년 동안 충분히 쉬었고, 다행히 새로 시작한 일도 자리를 잡았다. 인생 후반부에 다시 20년 정도는 신나게 달리고 싶은 마음이 모락 모락 올라왔다. 내가 가진 최고의 자원, 즉 몸 상태를 점검했다. 한 달에 10일 이상 출장을 가도 “끄떡 없다”던 나는 이제야 그간 몸을 살피지 않았다고 인정한다. 고통스럽다. “출장”이란 단어만 들으면 마치 소풍을 앞둔 어린이마냥 마음이 들뜨고 몸이 분주해진다. 작년 10월 출장길에 인연이 닿은 지리산 실상사에서 우연이라고 단정짓기에는 흥미진진한 일들이 이어졌고, 어느 새 나는 지리산을 일터로 맞이 했다.
지리산 출장길에 뜻밖의 인연들과 이어지는 신기한 경험을 한다. 따스한 기운을 풍기는 도반님을 만난 것도 그랬다. “탄탄, 평소에 어떤 운동하나요? 템플스테이 하는 동안 저랑 운동해요. 새벽에 나오세요.”라고 말을 건넸다. 호기심 많은 나는 “그럴까요?”라고 대답해 버렸다. 새벽 5시부터 일어나서 운동갈 준비를 하는 것은 내 몸과 마음에는 몹시 낯선 일이다. 하지만, 지리산의 새벽을 한 번 맛보고 나자 놓치기 싫은 일상이 되었다. 서둘러 준비를 하고 방문을 열면 기다렸다는 듯이 대자연이 와락 나를 품는 듯하다. 기분이 든다. 지리산을 넉넉하게 감싸면서 산 중턱에 멈추어 서 있는 새벽 안개 사이로, 띄엄 띄엄 서있는 집들 사이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광경은 새벽의 운치를 더한다. 이 풍경에 취해 정신없이 보다보면, 가슴이 벅차 오르고, 머리를 올려 하늘을 보게 된다. 마치 까만 비단 이불에 곱게 수놓인 듯한 별들이 쏟아질 듯이 반짝인다. 그 이불 속으로 들어가듯 어둠이 두툼하게 깔린 절 마당으로 성큼 들어 간다. 내 발자국 소리가 새벽 풍경의 일부로 스며드는 듯한 기분도 든다. 동네 개들이 짖는 소리가 멀리서 들리고, 닭이 우는 소리도 산내 마을에 울려 퍼진다. 새벽 이슬을 머금은 찬 공기를 가슴 깊이 들이마시면서 걷다 보면, 운동 수업이 열리는 법당에 닿는다. 높은 툇마루를 발바닥에 힘을 주어 올라 서서 법당문을 열면, 운동오는 동네 사람들을 기다리며 법당을 적당한 온도로 데워둔 효산스님이 씨익 웃으며 “운동합시다”라고 인사를 건넨다. 운동이라는 단어야말로 내 인생에서 멀찌기 밀쳐 두고 살았는데, 지리산까지 들어와서 운동이라니, 그것도 이 새벽에!
“자기 몸을 잘 살피세요. 몸의 근육 하나 하나가 들려 주는 소리를 잘 들으세요. 앞에서시범 보이는 사람을 그대로 따라 하시면 안 돼요. 내 몸이 필요로 하는 움직임은 사람마다 달라요. 그러니 제가 보여 드리는 모습은 참고만 하시고, 내 몸에 맞추어서 각자 단련하세요.” “저를 보지 마시고, 여러분들의 시선은 정면에 두세요. 내 시선과 정면으로 마주하는 대상이 뭔가요? 앞에 앉아 계신 불상이라면 눈 싸움을 해 보세요. 누가 먼저 시선을 피하는지 오늘 한번 겨뤄 보세요. 참고로 저 분은 눈을 깜박이지 않으십니다.” 잔뜩 힘을 넣어서 몸을 움직이던 동네 어른들은 나지막히 설명하던 스님이 던진 이 말씀에 폭소가 터진다. 그 바람에 몸을 마음대로 못 하는데서 올라오던 스트레스가 날아가 버리고, 입가에 미소마저 흐릿하게 떠오른다. 스님은 말씀을 이어간다.
“자꾸 옆눈으로 제가 어떻게 하는지 째려 보지 않으셔도 됩니다. 내 시선에 들어 오는 것만 보셔도 충분해요. 내 몸이 어떻게 반응하는지에만 시선을 주세요.” 그러다가 동네분 한 분이 “스님, 가르쳐 준 대로 왼쪽 엄지 발가락에 온 몸을 실으면서 살짝 몸을 틀어 보는데…. 잘 안 되요. 지금 제대로 가르쳐 주는거 맞아요?”라고 툭 한마디 던지고, 법당에 고요히 퍼져 있던 평화로움이 폭소로 산산조각이 난다. 이 솔직한 말에 모두 속이 시원하다는 눈치다. 스님은 “잘 안된다고 느낀다면 맞게 하고 계시는 거예요. 안 되는 동작을 기어이 해 내는게 운동이 아니예요. 몸이 해 내는 만큼 조금씩 꾸준히 해 가다 보면 충분히 운동이 되어요. 길게 보고 천천히 가세요. 잘 하고 계십니다”라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하나의 동작이 척추에 붙은 근육들과 어떻게 맞물려 움직이게 되는지, 등과 팔, 허벅지, 발목에 붙은 근육과는 어떻게 작용, 반작용을 하는지 우리가 몸을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반복해서 들려 주신다. 이제야 몸을 살피게 되었다.
달리기를 뛰고, 만보 걷기를 해 내고, 헬스장을 정기적으로 다니면서 강도 높게 몸을 움직이고, 땀을 비오듯 흘려야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운동복을 제대로 갖추어야 운동이 제대로 된다고, 번듯한 헬스장이 없어서 운동할 여건이 안 된다고도 생각했다. 운동 장비를 하나씩 갖추는 것도 운동하는 재미라는 말에 동의했다. 지리산 실상사에서 만난 “운수대통”이란 운동반에서 운동에 대한 대전환을 경험한다. 스님은 “운동 따로, 삶 따로”가 아니라고, 걸을 때도 내 발이 어떻게 땅에 닿는지를 살피면서 걷기만 해도 “운동과 일상이 함께 간다”고 말씀하신다. 운동을 하는 목적은 목숨이 다하는 그 날까지 몸을 잘 세우고, 두 다리로 직립보행을 하는 것이라고, 이것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는 방법이라고 들려 주신다. 자기 몸의 작동을 제대로 알아차리고 걷기만 해도 충분히 “운동하는 삶”이라고 마치 생전 처음 들려주는 것처럼 온 마음을 담아 반복해서 들려 주신다.
오래간만에 지리산 출장을 갔다. 반가움에 한 걸음에 달려가서 새벽 운동 수업이 열리는 법당문을 활짝 열었다. 스님께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묻자, 귀에 익숙한 내용이 울렸다. “잘 지냈어요, 운동하고, 수행하고 지냈어요. 절에서 맡은 소임은 절에 오시는 도반님들, 산내 마을 분들과 운동, 건강을 나누는 거예요. 그렇게 살았어요” 한 시간 남짓동안 운동을 하자, 몸이 들려 주는 메시지가 온 몸에 울렸다. 몸을 움직이는데 도움이 되라고 들려 주는 스님의 말씀은 삶을 어떻게 살지를 깨닫게 한다.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몸이 잘 정돈되어 있는지,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는지, 주변을 불필요하게 살피고 있지는 않은지, 동작을 하나 할 때 다른 동작으로까지 영향을 줄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는지, 몸과 마음은 잘 통하며 작동하는지, 죽는 그 날까지 조화롭게 움직일 몸을 만들고 있는지 살핀다.
사진: 효산스님 (지리산 실상사)
참고자료
https://www.silsangsa.or.kr/our-news/?bmode=view&idx=168749403
https://www.silsangsa.or.kr/events/?bmode=view&idx=164213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