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터에 바람이 불었다
글: 박찬희 소장 (박찬희 박물관 연구소)
강원도 원주의 절터인 거돈사지. 흥법사지, 법천사지와 함께 원주의 빅3 절터다. 세 절터 모두 매력적인데, 이 가운데 거돈사지를 가장 좋아한다. 무엇보다 절터 가장 높은 언덕에서 절터를 내려다보는 맛이 좋기 때문이다.
작년 겨울 거돈사지를 좋아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지인들과 이곳을 방문하기 전 인터넷으로 자료를 찾던 중이었다. 화면에는 은하수가 거돈사지의 밤하늘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절터 위로 흐르는 은하수라니! 알고 보니 이곳은 사진을 찍는 덕후들에게 은하수로 널리 알려졌다. 너른 절터, 나지막한 산, 맑은 공기 그리고 무엇보다 차가 절터 입구까지 갈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란다.
언젠가 거돈사지 위로 뜬 은하수를 보자고 친구와 약속을 하고는 때를 기다리던 중이었다.
“거돈사지에서 전시회 하니까 한번 와요.”
도자조각을 하는 정 작가님이 연락을 했다. 평소 작가님의 인물 작품을 좋아했다. 넉넉한 미소를 지닌 작품을 보고 있으면 긴장된 마음도 어느새 말랑말랑해졌다. 좋아하는 절터에 좋아하는 작품이 전시된다니.
<사진 : 원공국사승탑 앞에서 본 풍경>
며칠 후 원주역에서 지인을 만나 40분쯤 차를 달려 거돈사지에 도착했다. 하늘은 파랗고 섬같은 구름은 천천히 흘러가고 바람은 거세게 절터를 지나갔다. 가벼운 발걸음으로 절터 앞 계단을 올라가자 절터 곳곳에 전시된 작품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진: 작품이 일깨운 절터>
천년된 느티나무 아래 있던 작가님이 우리 일행을 발견하고 반가운 얼굴로 달려왔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작가님은 작품 안내를 시작했다. 온몸으로 바람을 맞으며 나가는 장면을 묘사한 인물 앞에 섰다.
“모성은 당당하게 바람을 맞이하고 분별하지 않고 모든 것을 품죠.”
이런 뜻이 담겨서인지 신라의 얼굴무늬수막새 같은 둥글둥글한 작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편안해지면서 그냥 그렇게 그 앞에 머무르고 싶었다.
절터에는 쉼 없이 바람이 불어왔다. 바람은 머물지 않고 움직이면서 만나는 모든 것에 흔적을 남기고 변화를 부른다. 나무를 스치면 나무를 흔들고 바위와 만나면 바위를 조각한다. 조각된 바위에는 바람이 지나간 과거, 스치는 현재, 다가올 미래가 녹아있다. 그래서 바위에는 영원한 시간의 흐름과 순환이 들어있다. 내 눈앞에는 바람이 바위를 조각해 드러낸 듯 한 인물 조각이 놓였다.
“단절을 잇고, 거친 시간을 순화하며, 존재를 부드럽게 하는 힘. 나에게는 예술의 궁극은 위안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감정적 위로가 아니라, 모든 것이 흙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되는 순환의 자각에서 오는 깊은 평안이다.”
(출처: 전시 팸플릿)
대지의 바탕이며 모든 것을 키워내는 흙, 흙 위에서 순환하는 삶, 그리고 삶과 죽음을 비롯한 모든 것이 연결되었다는 자각. 절터와 작품과 바람과 구름과 풀과 공기와 내가 이어졌고 또한 과거의 절터와 지금의 내가 이어졌다는 느낌이 들면서 절터가 따뜻하게 다가왔다.
<사진. 삼층석탑 앞에 놓인 피에타>
삼층석탑 앞에도 작가님의 조각상이 놓였다. 멀리서는 오랜 시간 바람을 맞은 바위처럼 보이던 작품은 가까이 가자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세부가 생략되고 절제된 그 작품은 세상을 떠난 아들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묘사한 피에타다. 이 피에타는 구체적이지 않아 많은 상상을 불렀다. 자식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격한 어머니가 그 죽음을 받아들이며 애도하고 위로하는 모습을 떠올리자 마음이 뭉클해졌다.
절터에 놓인 피에타는 어느 순간 보살로 바뀌고 마침내 부처로 변했다. 이들은 모든 아픔과 절망을, 깊은 슬픔을 받아들이고 위로하는 듯한 존재들이다. 절터에서 사라진 부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세상 속으로 들어가 피에타의 성모처럼 사람들을 보듬느라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피에타가 놓인 삼층석탑을 지나 부처를 모셨던 금당으로 올라갔다. 지금 그곳에는 건물의 기둥이 놓였던 주춧돌과 불상이 놓였던 받침인 대좌가 남았다. 대좌는 돌을 다듬어 거대하게 만들었는데, 원래 모습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깨져나갔다. 이 정도로 깨지려면 불을 맞아야한다. 조선 중기 어느 시기인가 불이 절을 휩쓸고 지나간 것 같았다. 대좌를 한 바퀴 돌며 돌에 스민 역사의 한 자락을 맛보았다. 대좌와 절터는 단지 폐허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시간의 흐름 속에 존재하며 자연스럽게 나이 드는 것 같았다.
<사진. 바람을 맞는 작품>
고려 초의 고승 원공국사의 업적을 기록한 원공국사승탑비를 본 후 원공국사승탑이 있던 언덕으로 올라갔다. 원공국사는 거돈사와 인연이 깊은 스님이었다. 현재 언덕에 놓인 원공국사승탑은 복제품이며 원본은 일제강점기에 이곳을 떠나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앞뜰에 전시되었다.
승탑이 있던 언덕에서 거돈사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내가 거돈사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절터를 보고 있으면 뭔가로 꽉 찬 충만감이 들었다. 이번에도 더 이상 보탤 것도 뺄 것도 없이 그냥 그대로 좋았고 지금 이 순간 내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마치 시간의 축이 휘어져 이곳에는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 같았다. 원공국사는 이곳에서 천년 동안 절을 내려다보았다.
승탑을 내려와 일행과 떨어져 풀이 자란 절터 여기저기를 걸었다. 예전에는 번듯한 건물이 서있고 사람들이 분주히 오갔을 이곳을 걷자 절터의 시간과 기억을 더듬어 찾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걷기는 내가 절터와 교감을 나누는 방법으로 바람 부는 대로, 걸음 닫는 대로 걷다보면 어느 순간 과거로 가는 통로가 열리는 느낌을 받는다. 이번에도 그런 기회가 올까?
<사진. 거돈사지에 전시된 작품>
그때 절터에서 소곤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절터 이곳저곳에 전시된 정 작가님의 작품들이 걸어 다닌 것 같았다. 이 작품들은 오랜 시간 절터 깊은 곳에 잠들어 있던 사람들처럼 보였다. 신라 사람도, 고려 사람도, 조선 사람도 모두 활짝 기지개를 켜고 바람 부는 절터를 산책했다. 나도 그들과 함께 절터를 누볐다. 햇빛을 받은 작품들은 더욱 반짝거렸고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조각 작품은 거돈사지에 바람을 불러일으켜 절터의 침묵을 깨워 잠든 사람들을 불러냈다.
잠깐 동안 다른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자 느티나무 아래에서 나를 기다리는 일행이 보였다. 이곳에 머물며 저녁노을을 보고 은하수가 뜨고 별 아래에서 산책하는 작품들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떠나야했다.
“내가 지금까지 만난 절터 가운데 오늘 거돈사지가 가장 아름다웠어요.”
일행에게 말하는 그 순간에도 바람이 불었고 나무들은 바람을 따라 물결처럼 움직였다. 조작 작품이 일으킨 바람은 내게도 불어와 절터를 걷는 내내 즐거웠다. 다음에 거돈사지를 찾을 때는 어떤 바람이 불어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