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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와 오방색, 색으로 정렬한 조선의 세계관

모든 것은 고유의 의미를 띄고 있었고, “그냥”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종묘를 만났다. 도심 속에 숨겨진 보물섬과 같은 종묘를 만나고 있다.

김대영 Jul 27, 2026
종묘와 오방색, 색으로 정렬한 조선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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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를 지낸 곳이고, 더구나 조선왕조의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곳인데 대문이 빨간색이라니?”

 

처음 종묘에 간 날 빨간색 외대문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안으로 들어가서 짙은 회색으로 된 삼로를 보자 “죽음, 제사와 관련된 색은 회색이나 검정”이라는 고정관념과 맞다며 안도감을 내쉬었다. 해설사를 따라 제사를 모시기 전에 임금이 목욕재계를 했다는 재궁, 제사 음식인 제수를 장만했다는 전사청 등을 따라 걸으면서, 조선시대 사람들이 제사를 모시는데 얼마나 진심이었는지를 배웠다.

 

종묘 외대문 (출처: 궁능유적본부)

드디어 500여 년의 역사를 품은 역대 조선 왕조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 정전에 도착했다. 하늘과 땅을 가르듯이 가로로 펼쳐진 7만 장의 회흑색 기와를 마주 하자 조선 왕조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해서 나도 모르게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그런데 정전의 신실들도 온통 빨간색이었고, 입구에서 만난 빨간색 외대면과 연결이 되면서 “왜 또 빨간색이지?”라며 살짝 볼멘 목소리마저 마음에서 들리는 듯했다. 여타의 사적지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섰던 종묘에서 나는 무언가에 자꾸만 끌려들어 가는 것 같았다.

 

[박찬희 박물관 연구소]의 박찬희 소장님 제공

 

그러던 어느 날 고궁박물관 관련 자료에서 “왕실의례실 내에 종묘 제례”에 관한 사료가 있다는 한 줄을 읽었다. 마음은 당장이라도 달려가서 직접 보고 싶지만, 내 캘린더는 이미 일정이 빼곡히 차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궁박물관을 가야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주말에 1시간 남짓을 결국 만들었다.

"박물관에서 1시간만 보내자"라는 계획은 시작부터 역부족이라는 것을 알기에 “마음먹은 대로 잘 써야 한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고궁박물관이 있는 경복궁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다른 전시실도 궁금해서 흩어지는 시선을 자제하며, 지하 1층에 있는 왕실의례실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왕실의례실

 

드디어 “왕실의례실”이란 팻말이 눈앞에 나타나자 비로소 다리에 힘이 풀리고 얼굴에 미소마저 번졌다. 그제야 느릿느릿하게 걸음을 옮기며 전시를 감상했다. 호흡을 깊게 내쉬며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남은 시간 동안은 사진으로 기록해 가서 다시 볼 작정이었다. 전시 설명문을 읽고 사진을 찍는 행동을 마치 의식을 거행하듯이 반복했다. 그러다가 “탄생 3일째에 원자의 탄생을 종묘와 사직에 알리는 고사묘를 지내 탄생 축하에도 예를 다했다”라는 설명을 읽었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왕실의례실

 

이 짧은 글을 읽으면서 간절히 기다리던 새 생명의 울음소리가 궁궐에 울려 퍼졌을 때 사람들이 얼마나 반가웠을지, 그 기쁜 소식을 조선식 예법에 따라 조상들께 종묘에서 고하는 의식인 고유를 준비하던 조선인들의 분주한 몸짓이 상상이 되어서 나도 살짝 흥분이 되었다.

종묘는 제사를 지내러 왕들이 일 년에 다섯 번만 들린 곳이 아니었다. 종묘 밖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왕실의례라는 큰 틀에서 보니 종묘에 대해 새로운 것을 배우게 되어서 즐거웠다. 1시간이란 시간은 마치 10분처럼 흘러갔고, 나는 전시장 출구의 벽면에 적힌 문장 앞에서 멈춰 섰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왕실의례실

 

"예를 기술한 것에 3천3백 가지의 글이 있지만, 그 요점은 길(吉)·흉(凶)·군(軍)·빈(賓)·가(嘉), 다섯 가지에 불과할 뿐이다..... 이 다섯 가지의 예를 갖춤으로써 사람의 도리가 구체화되는 것이니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자가 이를 버리면 다른 할 일이 없는 것이다.” (국조오례의의 서문의 한 구절)

조상의 죽음, 이별, 관계의 단절, 슬픔의 장소가 종묘라고 짐작했는데, 아기의 탄생을 알리는 고유의 장소라고 배우고 나자 이 다섯 글자 중에서 종묘는 어느 글자에 해당하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더 머물고 싶은 마음을 다독이며 왕실의례실을 서둘러 나오면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다섯 글자는 신을 섬기는 길례, 죽음을 맞는 흉례, 나라를 지키는 군례, 외국 사신을 맞는 빈례, 혼인에 관한 가례를 뜻했고, 종묘는 길례에 해당했다.

마치 보물 찾기를 하는 아이처럼 “길례”의 의미를 파고들었다. 길례의 “길"자를 길할 길, 좋은 일 길로 짐작하고, 아마 혼례 등을 의미할 거라고 단정 지었는데, 혼례는 “가례”에 해당되고, “길례는 복된 날, 좋은 날로, 조상들과 만나는 조선의 의례"라고 했다. 길례는 “복을 달라고 비는 의식”이 아니라 “천지와 조상에게 예(禮)를 올리고 국가와 사회의 질서를 바로 세우는 가장 중요한 의례”라고 했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왕실의례실 영상자료

 

복되고, 좋은 날에 길례를 치르던 장소가 종묘라는 사실을 배우고 나자, 색에 대해서도 내가 갖고 있던 추측이 틀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종묘에서 보물찾기”를 재미있어하며 계속 빠져들었다. 오방색, 즉 흙, 백, 황, 청, 적색을 사용해서 단순히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길례의 정신을 시각적으로 드러낸 것이라 했다.

유교에서 “예”는 천지의 질서를 의미했고, 오방색은 이 우주 질서를 시각적으로 구현했다. 흑(黑)은 생명의 근원과 순환을 상징했고, 백(白)은 정결과 절제를, 황(黃)은 중심과 중용의 조화, 청(靑)은 생명의 시작과 왕조를 계승한다는 의미를, 적(赤)은 왕의 덕과 생명력을 의미했다고 한다.

종묘 정전 (출처: 궁능유적본부)

종묘에서 회흑색인 정전 기와지붕은 삶과 죽음의 순환을 상징했고, 7만 장에 이르는 기와의 가장자리를 정리한 회반죽 마감은 있는 그대로 드러나게 해서 흰색 띠를 이루며 절제와 정결을 표현했고, 임금을 상징하는 황색은 당대의 왕을 존중하며 신실 내부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됐다. 생명을 상징하는 청색을 찾아 칠해진 면을 살펴보면 모두 땅을 향해 있고, 보일 듯 말듯한 정도로만 칠해져 있다. 외대문과 정전과 영녕전의 문과 기둥을 칠한 적색은 왕들의 덕을 칭송하고, 세세생생 하는 조선왕조의 생명력을 상징했다. 길례를 모시던 종묘는 예를 따라 천지와 인간 사회가 질서 있게 돌아가는 상태를 오방색으로 표현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배웠다.

국립고궁박물관 지하 1층에 위치한 왕실의례실 영상자료

조상들의 장례 후 3년 상을 궁궐 혼전에서 모신 후에 신주를 종묘로 모실 때 조선왕조는 헤어짐의 슬픔에 싸였을 거라는 내 추측과는 달리, 사실은 신주의 모습으로 500여 년에 걸쳐 조선왕조의 대가족이 한자리로 연결되는 즐거운 일이었다. 왕실의 기쁜 일을 조상들 앞에 엎드려 고하던 왕들의 등 뒤에서 그 모습을 따라 신하들과 백성들은 함께 엎으려 절하며, 국가통치이념인 효를 체화했다. 조선왕조가 죽은 조상들과 소통한 방식은 길례였고, 그 역사를 기록한 살아있는 공간이 종묘였다. 종묘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초월하여 혈연의 인연을 이어간 장소이자, 조선왕조가 누린 복을 만방에 알리고 정통성을 확인하던 상징적 장소였다.

종묘의 삼로 (출처: 궁능유적본부)

종묘의 적색, 길묘라는 의미가 기존의 추측과 맞지 않는며 느낀 불편함을 해소하려고 실마리를 찾다 보니 마침내 보물상자의 암호를 풀어낸 기분이었고, “맥락에서 확인하자”는 보석 같은 교훈도 발견했다.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색 하나도 허투루 취하지 않고, 나라의 가치관을 다섯 가지 색으로 정렬했다는 사실을 배우고 숙연해졌다. 조상들의 진정성이 담긴 삶의 터전을 만난 반가움과 그분들의 정성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종묘가 다시 가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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